Friday, December 21, 2012

Film Restoration - The Behind Story


- 또순이와 빨간마후라 -
 
올해의 영화 복원 사업을 돌이켜 보니 여러 가지 난관들을 거쳐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 <또순이>와 <빨간 마후라>를 복원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우선, 우리의 또순, <또순이>부터 시작해 보자. 디지털 심화복원 대상작박상호 감독의 1963년작 <또순이(부제 : 행복의 탄생)>였다. 또순이는 부유한 운수회사의 여식이지만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여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하고 좋은 신랑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1960년 초의 판자촌, 재래시장, 버스종점 등을 배경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서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어 박상호 감독의 연출력과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또순이의 역할을 맡았던 도금봉은 억척스럽고 생활력이 강한 함경도 여자로 열연하여 제10회 아시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필름이 유실된 것으로 알았던 이 영화는 2003년도 5월에 박상호 감독이 직접 16mm 프린트를 기증하면서 한국영상자료원이 필름을 소장하게 되었다. 오래전에 제작된 영화라고 할지라도 오리지널 네가필름을 수집하는 경우에는 보통 그 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포지티브 프린트, 그중에서 16mm 필름을 수집하는 경우에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순이>의 경우도 그랬다. 디지털 복원을 하기 위해 필름을 확인했더니 우려했던 모든 종류의 훼손(스크래치, 더스트, 플리커, 프레임 소실 등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욱이 화질과 색을 담고 있는 정보가 낮은 16mm 필름을 원본으로 하여 디지털로 복원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결국에는 디지털 복원의 마지막 단계인 색보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보통의 작업에서는 RGB값을 조정하면 색이 자연스럽게 살아나는데 원본필름의 색정보가 별로 없다보니 컨트라스트가 강해지거나 그라데이션이 올라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추가 작업이 필요했지만 일정상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미처 색보정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상영이 이루어졌다. 물론 일반 관객은 필름의 상태가 원래 그러려니 하고 보아 넘겼겠지만, 우리 관계자들은 완성본을 보여줄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에 상영회에 참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GV 상영관의 문제로 영어자막이 나오지 않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영화제 초청 상영이 끝난 후, 마침 영화제에 참석한 메인 칼라리스트에게 각별한 요청을 하고 추가 색보정 작업까지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소개할 디지털 복원작은 <빨간 마후라>(신상옥, 1964)이다. 6.25 당시 공군 파일럿의 의리와 사랑, 전투를 담은 영화로 신필름, 아니 신상옥 감독이 아니었으면 제작하지 못했을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1964년 흥행 1위, 공중전을 촬영한 최초의 한국영화, 쇼치쿠가 일본에서 배급한 첫 번째 영화 등 몇 가지 기록을 세웠다.
 
자료원은 2011년에 아시아 영화의 디지털 복원을 위해 부산국제영화제, 동서대학교, 에이지웍스와 함께 아시아영화복원협의회를 꾸렸고, 그 첫 번째 대상으로 <빨간 마후라>를 선정하였다. 사업의 첫 번째 대상작으로 꼽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면, 이 영화가 다양한 버전의 필름 소스에서 좋은 영상을 골라 편집함으로써 보다 완벽한 풀버전을 소개할 수 있다는 점, 디지털 복원 시에 4:3 비율의 화면과 2.35:1의 화면을 VFX 기술로 합성할 수 있어 디지털 복원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마침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신영균이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회고전 섹션으로 결정되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가 선사할 수 있는 다양한 재미로 인해 대중에게 사랑받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참여 기관은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대략 한국영상자료원은 대상 필름의 보수, 세척, 스캔, 편집을 맡았고, 에이지웍스는 디지털 복원을, 동서대학교는 VFX,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는 마케팅을 담당했다. 몇 차례의 실무협의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쉽게 추동을 받지 못했는데 그 중심에는 재원 조달의 문제가 있었다. 재원이 담보되지 않는 이상, 어느 곳에서도 선뜻 인건비 등 비용을 미리 지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후원 경험이 풍부한 영화제 측에서 여러모로 타진을 해보았지만 수천만 원을 협찬할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영화제 개최 불과 몇 개월 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소한의 디지털 복원비용을 보장하고 나서야 복원에 착수할 수 있었다.
 
미리 준비한 디지털 시네마 파일들과 편집리스트를 넘기고, 각 파트에서는 디지털 클리닝, VFX, 색보정, DCP 마스터링, 영어자막 처리까지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과연 영화제 상영일까지 완성본 작업이 가능할까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관계자들의 열정과 수고로 <빨간 마후라>의 디지털 복원이 마무리되었다. 이 영화는 부산영화제 상영관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CGV 아트리움관에서 상영되었는데, 당시 전 좌석이 매진된 것은 이일에 관계했던 모든 이들에게 큰 보상으로 다가왔다. 시사회에 참석했던 해외 게스트들은 이 영화를 자기 영화제에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첫 상영을 마치고, 복원 실무에 관계했던 에이지웍스 관계자들과 조촐한 뒷풀이를 가졌다. 여기에는 복원을 주제로 한 시네마 포럼에 참석했던 이태리 볼로냐 영상복원연구소 소장인 다비데 포찌도 함께 했다. 술잔이 돌고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세계의 많은 영화를 복원하고 있는 볼로냐의 복원 방법, 장비, 프로그램들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사실 복원 업체 입장에서는 자료원을 제외하고는 디지털 복원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투자와 외국과의 교류가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자리는 복원 실무자들이 평소 궁금해 했던 여러 가지 실무적인 문제들을 물어 보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다. 결국에는 이태리의 복원 인프라에 대한 부러움과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에 대한 과제만 가득 안게 되었지만.
 
이 두 편의 영화가 각각 다른 방법의 복원 방법이 적용되었고, 예기치 못한 장애물들을 헤쳐 나가는 동안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이렇듯 영화를 복원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이를 통해 소중한 한국영화가 보다 단장된 모습으로 오늘의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뿌듯하다.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