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16, 2013

디지털 시대의 필름 현상소의 의미

영화진흥위원회 현상소 기자재를 인수하며
 
디지털 기술은 한국의 영화 산업을 한마디로 “재편”했다. 영화 후반작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년 전부터 디지털 인터미디에이트라는 용어의 확산과 함께 필름 현상소라는 단어 앞에는 “전통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코닥의 위기설이 돌았고, 급기야 올해에는 국내에 모든 필름 현상소들이 문을 닫았다. 언제나 그렇듯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갑작스럽기만 하다.
 
지난해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인화 현상기자재의 인수 문제로 기관 간 실무 협의를 계속해 왔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부산 이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필름 현상소 기능까지 옮겨 가는 것은 큰 짐이 된 것이 분명하다. 사실 영화산업 진흥의 견지에서는 그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영화필름은 온습도에 취약하고, 시간이 지나면 퇴색될뿐더러 초산화 현상 등으로 인해 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영상자료원은 변질에 대비해 보존용 사본을 만들어 두는 “영화필름 복원 복사 사업”을 매년 추진해왔다. 오랫동안 이 임무를 같이 해왔던 사업 파트너인 필름 현상소들의 폐업은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해외에 일을 맡기기에는 몇 배의 노력과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영화진흥위원회의 현상사업 종료 결정은 관련 기자재의 자료원 무상이관 논의로 발전했고, 이는 우리 본연의 임무를 더욱 충실히 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외국의 경우 영국 국립필름 & 텔레비전 아카이브, 미국 의회도서관, 호주 국립필름 & 사운드 아카이브, 프랑스 CNC 아카이브, 러시아 고스필모폰드 등이 오래 전부터 자체 필름 현상시설을 갖추어 보존용 사본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으며 필름의 광학 복원 사례들도 자체 아카이브 시설을 갖춘 곳에서 주로 전파되었다.
 
원론적인 문제를 짧게 짚어보자. 디지털 시대에 영상자료원은 왜 필름 현상소를 운영하려고 하는가? 하는 것이다. 영화용 필름은 적정한 온습도에서 보관 시 수백 년을 보존할 수 있는 보존성이 검증된 매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시네마 파일에 대해서도 영구 보존을 위해 영화를 필름에 담아 두는 것이 안정성뿐만 아니라 경제성의 측면에서도 최선의 방안으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의 영화필름 복원 복사사업의 경과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필름 컬렉션 중에는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만 있고, 극장 상영을 위한 프린트 필름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상태가 나쁜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는 영화 평론가, 영화사 연구자, 프로그래머 등의 요구로 상영용 프린트 필름을 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2006년부터 “영화필름 복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보존용 사본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필름의 보존용 사본이 필요한 대상은 4,225편이며 그 중 800편에 대해서는 보존용 사본을 확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425편에 대해서는 필름의 훼손도를 파악해서 사본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번호
필요 작업 내역
색채
대상
보유
잔여
1
유일본 프린트 필름 복원
흑백
90
80
10
컬러
186
61
125
2
듀프 네거티브 필름 인화·현상
흑백
255
47
208
컬러
419
275
144
3
마스터 필름 인화·현상
흑백
279
207
72
컬러
2,848
125
2,723
4
테크니스코프 네거티브 필름 인화·현상
컬러
148
5
143
 
 
4,225
800
3,425
 
영화필름 복원복사 사업의 경우에 자료원은 필름 보수와 세척을 진행하고 외부 필름현상소는 인화 현상을 맡아 왔다. 외주 사업은 여러 측면에서 장점도 있지만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품질 제고를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테스트를 필요로 하지만, 현상소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 자료원의 일은 언제나 부차적인 사업일 뿐이었다. 결국 품질은 타협의 결과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랫동안 자체 현상소를 운영하길 고대했다.
 
막상 영화진흥위원회의 기자재의 인수 문제가 테이블에 차려지자 선뜻 결정을 내리기쉽지 않았다. 사실 자료원에서는 필름 현상소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고, 노후된 장비를 다시 설치해서 운영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년에 영화진흥위원회의 장비 인수 검토를 위해 전문가들을 모시고 자문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자문위원들은 비록 아날로그 장비들이 내구연한이 지났으나 부품 조달이 가능하고, 현상기는 스테인레스 재질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조언해 주셨다.
 
이번에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인수하게 될 물품들은 인화, 현상, 폐수처리 관련 기자재이다. 인화 쪽은 특수효과 인화기, 밀착 인화기, 스텝 옵티컬 인화기, 저속 인화기가 대상이다. 복원이 필요한 필름들은 훼손이나 수축과 같은 이유로 옵티컬, 저속 인화기를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장비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색보정기를 비롯해서 컬러 네거티브 현상기, 컬러 포지티브 현상기, 흑백 현상기, 조약 시설도 함께 인수할 예정이다. 이 장비들을 신규로 도입하려면 약 50억 ~ 60억이 넘는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데 기관 간 협력으로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기자재 인수는 앞으로 많은 일들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 기자재들은 다른 장소에 일시 보관되었다가 2015년에 완공될 파주보존센터로 옮겨질 예정이다. 우선 이 복잡한 장비들을 설치하는데 있어 골머리를 앓을 것 같고, 그 후에는 테스트 및 안정화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편으로는 운영을 위한 예산과 인력 정원을 확보하는데도 주력해야 한다.
 
필름 현상시설을 갖추고 운영한다는 것은 영화필름의 복원과 보존 부문에서 연구와 기술을 축적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하며 이는 곧 보존용 사본과 복원 결과물의 향상으로 귀결될 것이다. 파주보존센터의 완공과 함께 아날로그부터 디지털까지 일관된 시스템을 가져 명실상부한 선진 필름 아카이브의 반열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For RSS feed or Twitter.
Name: Email:

0 개의 댓글: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