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10, 2012

Ssit-Kkim, BFI’s Century of Cinema

1995년 영국영화원(British Film Institute)은 영화 백주년을 기념해 18개국의 유명 감독들이 자국의 영화사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를 시리즈로 기획했다. 이 시리즈에는 미국의 마틴 스콜세지,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 일본의 오시마 나기사 등이 참여했는데 한국편은 장선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한국영화 씻김>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52분짜리 다큐멘터리에서 장선우 감독은 당시 유망한 영화감독들을 인터뷰해 한국영화사를 반추하고 한국영화의 미래를 전망했다. 이 <세계영화 1백년 다큐멘터리 BFI’s Century of Cinema> 시리즈 중에서 7편의 작품이 제48회 칸영화제에 특별 초청되었는데 <한국영화 씻김>이 포함되었다.



새삼스럽게 <한국영화 씻김> 다큐멘터리를 언급하는 이유는 얼마 전 우여곡절 끝에 마스터 테이프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한국의 주요 영화감독들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하다가 장선우 감독의 <한국영화 씻김>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당시 이 영화는 16mm로 촬영되었고, 극장 개봉이 아닌 비디오 마스터(Betacam)로 제한적인 상영이 이루어져 미처 수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 씻김>이 제작 후 무려 17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당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아직 영화계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몇몇 관계자와 연락하면 자료를 쉽게 수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는 처음부터 어그러졌다. 우선 제주도에 있는 장선우 감독에게 전화했더니 오히려 “아니 자료원에 없으면 어떻게 해요?”라는 질책성 반문만 돌아왔다. 본인은 자료가 없으니 당시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박기용 감독에게 연락해보라고 한다. 뉴질랜드에 있는 박기용 감독에게 이메일로 연락했으나 답변이 없었다.


<한국영화 씻김>이 칸영화제에 출품되었기 때문에 국제영화제 출품업무를 담당했던 영화진흥위원회 국제교류센터 박덕호 부장에게 문의했더니, 삼성에서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김은영 추계예술대학교 교수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한편, 김은영 교수는 <세계영화 1백년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VHS는 가지고 있지만 마스터 테이프는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 다큐가 캐치원(현재 CJ E&M)과 Q채널(현재 QTV)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케이블 방송국의 담당자를 수소문해서 전화했더니 데이터베이스에 내역이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제작사인 삼성전자에 문의했으나 또한 허사였다.


한 가닥 희망을 갖고 BFI National Archive에 <한국영화 씻김>이 있는지 문의하는 메일을 보내고 초초하게 회신을 기다렸다. 2주가 지나 <한국영화 씻김>이 담긴 마스터테이프 (BetaSP, D3) 그리고 VHS가 있다는 반가운 답장이 왔다. 김은영 교수에게 BFI에서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한국편 다큐멘터리가 2개 버전인데 영국 BFI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영국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Tony Rayins)의 내레이션 버전일 거라고 했다. 또다시 장선우 감독 내레이션 버전을 찾아야 했다.


결국 김은영 교수가 발 벗고 나서기로 했다. 삼성전자에 함께 근무했던 지인들을 통해 다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일주일 후,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QTV 자료실에서 <세계영화 1백년 다큐멘터리> 시리즈 전체를 마스터테이프(DVCAM)로 보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후 저작권자인 삼성전자에 양해를 얻고 QTV 편성팀의 협조를 받아 복사 수집을 완료하게 되었다.


<한국영화 씻김>은 새로운 한국영화를 모색하기 위한 여정이다. 장선우 감독은 식민지, 분단, 군사독재,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의 얼룩진 근대사 속에서 한국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있던 임권택, 이장호, 정지영, 김홍준, 박광수, 여균동, 강우석 등을 인터뷰해 한국영화의 역사를 평가하고, 이제는 할리우드의 경쟁에 맞닥뜨린 한국영화의 새로운 길을 묻는다. 장선우 감독은 씻김굿을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주며 과거의 부정을 씻고 한국영화가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길 기원한다.


수집된 자료는 이제 곧 열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인데, 세계영화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각 나라의 대표적인 감독들이 연출한 <세계영화 1백년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18개 국가(연출)는 다음과 같다. 미국(Martin Scorsese), 중국(Yang  Yin), 일본(Oshima Nagisa),한국(장선우), 영국(Stephen Frears), 아일랜드(Donald Tylor Black), 프랑스(Anne-Marie Miéville & Jean-Luc Godard), 독일(Edgar Reitz), 폴란드(Pawel Lozinski), 러시아(Sergej Selyanov), 인도(Mrinal Sen), 라틴아메리카(Nelson Pereira dos Santos), 스칸디나비아(Stig Björkman), 호주(George Miller), 뉴질랜드(Sam Neill)다.


다큐멘터리가 나온 후에 <한국영화 씻김>(이효인, 이정하 엮음, 1995)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씻김 이야기, 영화의 말과 얼굴, 한국영화 신파에서 탈근대성까지, 2000년 한국영화의 주역, 한국영화 76년 한국영화 76편 이렇게 총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한국영화사 공부는 제대로 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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