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5, 2012

아카이브와 저작권 그 애증의 서사

2009-03-10

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최선의 상태로 후손에게 전달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존 의무를 저해하지 않는 조건 아래에서 자료들이 조사, 연구, 공개 상영을 위해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 윤리강령에 적시되어 있다.

우리 원의 대중 이용(Public Access)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이와 같은 '보존' 우선 정책으로 인해 이용자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지 못했고 자연히 이해 관계자들과 많은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과거 수년에 걸쳐서 외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해묵은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갔고 그 결과 많은 성과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제도 개선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료 이용 시에 이용자가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절차였다. 한국의 고전영화들은 영화제의 회고전 섹션에 주로 상영되었고 프로그래머들은 한국영화계의 주요한 오피니언 리더였으니 파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저작권자 찾아 삼만리", "저작권 협상의 기술"이 회자되었고 그 불편부당함의 화살은 자료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에 베를린 영화박물관 관계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연간 약 300편의 필름이 외부로 대여되는데, 빈번하게 이용되는 영화에 대해서는 저작권자와 계약이 되어 있고, 이용자에게 받는 대여료의 절반가량이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 지급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저작권 이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2007년 말, 업무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수집팀이 분리되면서 자료 수집과 카탈로깅 업무를 맡게 되었고, 그 중에는 저작권 업무가 작은(?) 비중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막상 이 업무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작권 DB의 신뢰도 제고와 저작권 위탁관리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저작권법 7장에서는 저작권위탁관리업제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저작권위탁관리업이란 저작재산권, 출판권, 저작인접권,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 등을 그 권리자를 위하여 신탁관리하거나 대리중개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즉, 저작권의 위탁관리는 권리자가 관리단체에 권리행사를 위탁하고, 위탁관리자는 이용을 희망하는 자와 교섭하여 적당한 이용료를 산정하여 이용허락을 하고, 이에 따르는 이용료의 징수 및 분배와 함께 이용에 대한 감시를 하며 권리자와 이용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저작권위탁관리업에서 규정하고 있는 '저작권대리중개'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 관련 규정을 제정하고 저작권자와 이용자와의 표준 계약서를 마련하는 등 서비스를 위한 사전 준비를 마치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를 마쳤다.

가급적 1990년대 이전 작품들 중에서 우리 원 보유작, 한국영화 100선 등 우수작, 주요 감독작, 해외영화제 등에서 요청이 빈번한 작품 등 이용 빈도가 높은 영화들을 선별한 후에 약 두 달에 걸쳐서 저작권자들에게 동 서비스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대리중개 계약을 진행하였다.

저작권자들의 연락처 변경, 저작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거나, 양도증 등 관련 증빙 서류가 없는 등 계약 체결에 많은 애로를 겪었지만 신뢰성이 있는 곳에서 체계적으로 저작권 관리를 해주기를 바라던 저작권자들이 대리중개 계약에 흔쾌히 동의하였는데 그 작품 수가 262편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많은 주요한 작품을 가지고 있는 법인이나 개인 저작권자들은 우리 원과의 계약을 거부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연락이 쉽고 저작권 관리를 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원의 저작권 위탁 작품과 이들의 저작권 보유 작품을 함께 이용한다면 많은 한국영화를 더욱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어렵게 시작한 저작권대리중개서비스가 저작권자의 권리의 효율적 활용과 더불어 저작권 이용자의 편의를 제고함으로써 일반 대중들이 한국의 우수 영화를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되기를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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