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5, 2012

파랑새는 있다

2008-07-04

2004년 초 독립영화 수집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서울영상집단에서 펴낸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한국독립영화의 역사를 개괄한 책을 뒤적이며, 수집 대상 작품의 목록을 하나하나 엑셀 파일로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대학시절 총학생회에서 장산곶매가 제작한 <파업전야>(이은기, 이재구, 장동흥, 장윤현, 1990)를 상영한 적이 있었음을 기억해냈고, 학교 앞 정문에서 상영을 저지하려고 학내로 진입하는 전경들과 이를 막으려는 학생들이 서로 대치하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주인공이 사측과의 투쟁을 결심하며 쇠파이프를 높이 들었던 장면을 회상하면서 과연 우리 자료원이 그 필름을 보존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들기며 사내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던 기억이 난다. (<파업전야>의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보존하고 있으니 참 다행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필름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우리 직원들에게조차 생소했던 영상자료원의 기능이 국내 유일의 필름 아카이브로서 마땅한 수준에 훨씬 못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고작 열명 남짓한 직원이 필름의 수집, 카탈로깅, 보존, 상영, 입출고 등의 업무를 감당하던 당시로서는 체계적인 업무처리, 수집범위의 확대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에 1996년 영화필름 제출 제도가 시행되어 체계적인 극영화 수집이 이루어지고, 영화필름의 관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되는 등 안팎의 여건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2004년에 독립영화 수집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면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수집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매년 많은 양의 독립영화가 제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집 예산과 인력 같은 내부 자원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수집 대상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였다. 일단, 초창기 독립영화와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포럼, 인디다큐페스티발 등 주요 독립단편영화제의 본선 진출작과 수상작을 우선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 한국독립영화협회와 같은 관련 단체와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수집방법, 절차, 보상가 등을 결정하고 본격적인 독립영화 수집에 돌입했다.

그렇게 해서 2004년부터 소규모로나마 독립영화 수집을 시작했다. 이후 2006년까지, <아침과 저녁사이>(이익태, 1970), 서울영화집단에서 제작한 <결투>(문원립, 1982), <수리세>(홍기선, 1984), <그 여름>(김동빈, 1984), 그리고 감독들이 사전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작 <파랑새>(홍기선, 이효인, 이정하, 1986),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1987)을 비롯하여, 노동자뉴스제작단의 ‘노동자뉴스’시리즈, 이상인 감독의 <친구여, 이제 내가 말할 때>(1989)와 <깡순이, 슈어프로덕츠 노동자>(1999),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3, 변영주), <명성 6일의 기록>(1997, 김동원), (1994, 임창재) 등 독립영화 초창기의 주요작품들이 우리 수장고로 속속 들어왔다. 또한 최근작들 가운데서도 <굿 로맨스>(2001, 이송희일),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상을 수상한 <빵과 우유>(2003, 원신연), <잘돼가? 무엇이든>(이경미, 2004), 등 영화제에 출품된 독립영화들과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에서 추천한 작품 등 2000년 이후 독립영화도 163편 수집됐다.

매년 수십 편씩 늘려오던 독립영화 아카이브 구축작업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 해는 2007년이다. 영화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그간 예산문제로 인해 수집하지 못했던 독립영화를 일거에 아카이빙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영상집단, 노동자뉴스제작단, 푸른영상, 인디스토리, 영상원 그리고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필름들을 수집하였는데 그 편수는 무려 728편에 이르렀다. 또한 2006년도와 2007년도에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실습 및 졸업 작품 180여편을 위탁 보존하게 됨에 따라 명실상부한 독립영화 아카이브 구축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든 수년간 다양한 포맷(35mm, 16mm, HD, DV, Digi-Beta 등)으로 수집된 독립영화는 방송용 베타테입으로 매체 전환하였고, 이를 다시 디지털화하여 활용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현재 매체 전환된 독립영화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외부에서 대여해 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상암동의 영상자료실에서는 이들 디지털화된 독립영화 941편이 멀티미디어석에서 무료감상할 수 있도록 VOD로 서비스되고 있다.

수집팀에서는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추가로 620편의 독립영화를 수집할 계획이다. 
그간 우리 한국영상자료원의 수집정책은 장편 극영화 중심으로 꾸려져 왔고, 영화사들이 의무납본하도록 돼있는 국내 개봉영화에 집중해왔다. 비록 늦었지만 아카이빙 정책상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었던 독립영화 부문이 보완되어 국내 유일의 영화아카이브 기관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수집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독립영화 아카이브가 내실을 다져가면서 우리 자료원은 자료실에서의 VOD서비스 외에 시네마테크 KOFA의 기획 및 상설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독립영화들이 일반 대중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창구를 열어나갈 계획이다.

2007년에는 독립영화 관계자들과 지난 3년간의 수집 성과를 평가하고 앞으로 독립영화의 수집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간담회를 실시하였다. 한편으로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발전기금 사업대상으로 독립영화 아카이브 구축사업이 선정됨에 따라 그간 비용의 문제로 인해 수집하지 못했던 독립영화를 일거에 아카이빙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서울영상집단’, ‘노동자 뉴스 제작단’, ‘푸른 영상’, ‘인디스토리’, ‘영상원’ 그리고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필름들을 수집하였는데 그 편수는 728편에 이르렀다. 또한 2006년도와 2007년도에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실습 및 졸업 작품 180여 편을 위탁 보존하게 됨에 따라 대외적으로 명실상부한 독립영화 아카이브 구축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간 한국영상자료원의 수집 체계는 극영화 중심으로 꾸려져 있었고, 비록 늦었지만 아카이빙 정책상의 공백이라고 할 수 있었던 독립영화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귀중한 영화유산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소홀함으로 역사의 기억 속으로 묻혀 버릴 수도 있었던 이 필름들은 수년간의 노력으로 아카이빙 되고 대중들과 만나고 재평가되어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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